꿈 1에서 9
물오르는 나무들은 아름다워서 무섭다. 홀릴까봐. 또는 홀리지 않을까봐.
홀리면 돌아볼 수 없고, 홀리지 못하면 너무 막막하니까. 홀리지 않으면 지속할 수 없고, 홀리면 지속할 필요가 없는, 삶이라는 진퇴양난. 그 사이에서 난처해진 사람들이 개발하고, 계발시키고 있는 것이, 이를테면 ‘예술’이 아닐까, 맹한 생각을 한다. 하여간 저 물오른 식물들은 때때로 좀 ‘과’하다. 세계는 가끔 이렇게 과한 모습을 보인다. 내 생각에 그림은 그런 세계의 이 ‘과’함을 좀 덜어내는 작업이다. 그러니까 차원을 압축하는 것. 너무 압축해 대면 ‘주술’이 될 터이니, 각자 알아서 적당히 압축하고, 그 압축의 음영을 드러내주는 그런 일. 의도하지는 못했고, 다만 명료하지 못한 감각의 ‘겔’ 같은 상태를 그려보고자 했던 ‘꿈’이라는 제목의 일련의 그림들은 나중에 보니 내 그림들의 음영 값이었던 것 같다. 앞으로 내가 그릴 그림들의 표제어라고나 해야 하나. 무슨 책을 쓰는 것도 아니니 ‘목차’라고 하기는 뭐 하지만, 그것들은 앞으로의 작업을 지시하거나, 지시된 작업의 내용을 되풀이 설명하려고 할 것이다.
이 표제들이 무엇인지 ‘언어’로 확실하게 이름 붙이고 싶지만, 그것들이 지나치게 보편적인 것들이므로 못하겠다. 모호하고, 양가적이고, 어마어마하게 보편적이고, 무지막지하게 빛나는 이 세계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, 이 세계, 자체 밖에는 없다. 그림은 세계의 표상이 아니라 표제에 불과하다. 하긴, 표제라도 될 수 있다면, ‘그’ 진퇴양난을 견딜 수는 있을 것이다. 아니, 표제들의 목록을 잇대어 작성하는 일만이 그 사이에서 살 수 있게 해 줄 것이다.

이 작업들은 <근린시설전>에 냈던 것들인데, 따로 올려 둘 곳이 마땅치 않아, 이번 개인전의 아래 목록과 작업을 올려 놓습니다.